근처를 자주 지나다니면서도 가까이서 접하지 못했던 신림의 용소막성당을 들어가 보았다.
용암리 마을회관 옆으로 용소막성당이 보인다.
지나가면서 볼 때에는 그리 넓은지 몰랐다.
가까이서 보니 단아한 모습이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성당 입구에는 '선종 완노렌조신부 생가터'라는 돌비가 있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용소막성당은 성당 뿐 아니라 사제관, 수녀원, 교육관, 두루의 집, 유물관 등 부속건물 등이 있었다. 내가 방문 한 날도 일단의 청소년들이 수있었다.
원주 용소막성당 안내판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용암리에 위치한 강원도 유형문화제 제106호 원주 용소막성당
이 성당은 풍수원 성당과 원주 성당에 이어 강원도에서 세번째로 건립된 성당으로, 풍수원 성당의 전교회장으로 있던 최석완이 1898년(고종35년) 원주 본당 소속 공소로 모임을 시작했다가, 1904년 프와요 신부가 초대 본당신부로 부임하면서 독립성당으로 되었다. 발족 당시 원주군 일부와 평창, 영월, 제천, 단양 등 5개 군에 17개 공소를 관할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초가였다가 시잘레 신부에 의해 현재의 벽돌 건물로 지어졌다. 이 성당은 고딕양식을 변형시킨, 당시 우리니라 소규모 벽돌 성당의 소박한 모습을 보여 준다. 전면 중앙에 돌출한 3층 종탑을 두고, 3랑식 평면 구성을 하고 있다. 제단이 있는 후면은 8각형의 평면으로 되어 있으며, 서쪽의 한 면에는 제의실이 붙어 있다. 내부 기둥은 비교적 가는 팔각형 목조 기둥으로 되어 있다. 상부 천장은 목조로 된 반원형 아치로 되어 있고, 통로 부분은 평탄하게 처리했다. 내부 바닥은 신발을 벗어야 하는 마루로 되어있다. 창의 형태는 반원형 아치로, 테두리는 회색 벽돌로 장식되었다.
시잘레 신부는 신자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중국인 기술자들을 써서 이 건물을 지었으며, 1915년 가을에 완공하였다. 후에 일본군에 의해 종이 공출되고, 한국전쟁 때는 북한군이 창고로 사용하는 등 수난을 겪었다.
휴식을 취하며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멀리 중앙선 철도가 지나가는 철길이 보인다.
건물의 측면에는 기도를 드리는 장소로 보이는 곳에 촛불과 마리아상이 같이 있었다.
용소막성당을 나서서 용암교를 건너면 신림, 원주, 제천을 이어주는 5번 국도와 만난다.
용소막관관체험마을을 운영하는 모양이다.
마을주민과 어우러지는 성당이라는 느낌이다. 내 느낌이 맞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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