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린시절 이미 전성기를 지나 전설처럼 소개되던 영화배우 윤정희. 하지만 전설이 아니라 어쩌면 가깝고도 먼 곳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느지 모르겠다.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는 배우로서...
아침에 봄비를 맞으며 출근하는 길 내 머리속에 문득 시가 떠오른다.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시상들... 가게 문을 열고 컴퓨터를 켜니 영화 '시'에 대한 소개가 있어서 읽어보면서 무언가 가슴 뭉쿨함이 밀려온다.
나는 윤정희, 백건우 두 분에 대하여 자세히 모른다. 내가 그 사람들에 알고 있는 것은 지금 이 상태로 만족하련다.
하지만 '시'라는 영화에 대하여는 궁굼한 것이 많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시끄럽게 떠들지 않는다. 내 주장을 가슴끓이며 보여주지 않는다. 단지 인생이 무엇인지 이야기 한다.
이창동 감독이 직접 쓴 글씨란다.
배경음악과 함께 영화속의 시를 읽어보았다. 이 봄에 굳어가는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느낌이다.
그리운 부석사
정호승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마지를 울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하나 짓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창작과 비평사, 1997
--------------------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
----------------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시를 쓴다는 것
조영혜
시를 쓴다는 것은
동지섣달 이른 새벽
관절이 부어오른 손으로
하얀 쌀 씻어 내리시던
엄마 기억하는 일이다
소한의 얼음 두께 녹이며
군불 지피시던
아버지 손등의 굵은 힘줄 기억해내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깊은 밤 잠깨어 홀로임에 울어보는
무너져 가는 마음의 기둥
꼿꼿이 세우려
참하고 단단한 주춧돌 하나 만드는 일이다
허허한 창 모서리
혼신의 힘으로 버틴
밤새워 흔들리는 그 것, 잠재우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퍼내고 퍼내어도
자꾸만 차오르는 이끼 낀 물
아낌없이 비워내는 일이다
무성한 나뭇가지를 지나
그 것, 그 쬐끄만한
물푸레 나뭇잎 만지는
여백의 숲 하나 만드는 일이다.
--------------
십일월
조영혜
당신의 등에선
늘 쓰르라미 소리가 나네
당신과 입술을 나누는 가을 내내
쓰르라미 날개를 부비며 살고 있네
귀뚤귀뚤 나도 울고 싶어지게
쓰르람쓰르람
눈부비며 살고 있네
이제껏 붉던 입술은
낡은 콘크리트 벽안의
박제 된 낙엽처럼
바시시바시시 떨고 있네
지난 여름 손톱에 핀 봉선화 져 가도록
당신의 등에서 자꾸 쓰르라미가 울고
귀뚤귀뚤 나도 따라 먹먹해져서
당신과 포개어 가만히 누워 보고 싶네
---------------
장미 가시의 이유
조영혜
날 훔치려 말아요
내 안의 가시
온 몸 소름으로 돋는 날
더딘 맥으로 밀어내는 저 대궁의 우울
자결을 꿈꾸는 검붉은 미소 보아요
내민 손 거두어 주세요
수레바퀴는 구르기만 하던 걸요
어여쁘단 말로
꺾으려 하지 말아요
아프단 말 대신 자꾸 키워지는 가시
붉은 입술을 지켜야 하는 필사의 무기
소리 없는 눈물
그건, 무던히도 견디어 준 인내의 꽃
모르나요
겹겹의 붉은 물결이 잠시 흔들리는 것은
단지 내 안의 오월 탓이란 걸
이젠 정말
비가와도 가지려 하지 말아요
수레바퀴는 그냥 구르기만 해요
-------------
감자를 삶으며
조영혜
싹을 티워 내는 정수 박이
모질게 잘라 버리고
너의 허연 살점 게슴츠레 훔치며
불 위에 올려 놓는다
잠시 뒤면
몽실몽실 부풀린 몸
얌전히 식탁위에 오를 일만 남은 것
늘 뜨거워야 하는 것은
누가 만들어 준 운명인가
너의 생애는
땅을 밟고 일어서는 순간
호사스런 나비로 여름 한 철 꿈이라도 꾸었던가
아물지 못한 너의 촉수는
자꾸만 땅을 그리워 하며
맨몸으로 부화하는 나비의 꿈을 꾸지만
너는 이제 한물 간 불량 감자
차가워지는 이 한 철에도
화씨220도의 가슴으로
태워야 하는 너는 뜨거운 감자
-------------
오아시스, 밀양 각본, 감독 이창동 배우 윤정희
이다윗, 김희라, 안내상, 김용택
2010년 칸 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진출했다고 한다.
포스터의 사진이 왜 이 사진일까 영화를 봐야 알겠다. 아니 영화를 봐도 모를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6.2 지방선거 투표율 (0) | 2010.06.02 |
---|---|
교통소통이 원할하게 됩니다 (0) | 2010.05.18 |
신림 용소막성당 (0) | 2010.05.03 |
젊은 군인들의 죽음 (0) | 2010.04.27 |
[스크랩] 이발사의 지혜 (0) | 2010.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