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루피와 조로를 데리고 외출을 하기로 했다. 조로는 외출을 해도 대소변을 가리기에 밖에서는 절대 용변을 보는 일이 없다. 하지만 루피는 외출하면 꼭 실례를 한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사람이 없는 한적한 원주대학교를 찾았다.
생각대로 사람은 없었는데 날씨가 너무 덥다. 특히 예전 운동장은 공사를 해서 진입이 안되는 것 같았고, 새로운 운동장은 차량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원주대학교 지나서 진광카센터 옆 길로 들어서서 원주대학교 운동장 우측에 주차를 했다.
옆길로 원주대학교 운동장으로 올라가다 보니 '한국전 UN 프랑스군 원주지구 전적비'의 안내판이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없었는데 그 사이에 세워진 모양이다. '1951년 1월 9일부터 15일까지 한국군 장병 2명을 포함하여 프랑스 대대 최초로 15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다. 당시 미8군 사령관이었던 리지웨이 장군의 명을 받들어 프랑스 대대는 마장-외남송-구억천 지역에서 최초의 총검 전투를 펼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주대학교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길 왼쪽 언덕게 세워진 국기계양대와 전적비의 모습이 보였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의 길이 잡풀에 뒤덮혀 희미하게 보인다.
언덕에 올라가니 미국, 한국, 유엔, 프랑스의 국기가 계양대 위헤서 휘날리고 있었고 오른쪽에는 검은색 커다란 전적비가 서 있었다.
전적비의 주변에도 잡풀들이 자라서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누가 관리를 하는지 몰라도 잡풀을 제거하던지 아니면 전적비로 올라가는 길과 전적비 주변 10미터 정도는 바닥을 물이 스며드는 보도블록 등으로 깨끗하게 설치하면 전적비에 좀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자유를 위하여 -
1951년 1월 9일부터 15일까지 한국군 장병 2명을 포함하여 프랑스 대대 최초로 15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다. 당시 미8군 사령관이었던 리지웨이 장군의 명을 받들어 프랑스 대대는 마장-외남송-구억천 지역에서 최초의 총검 전투를 펼쳤다.
"총검은 유엔군 최후의 비밀병기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총검은 여러분들이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난 억제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앞으로 모든 부대는 총검이 통조림을 따는데에만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미국, 프랑스 이외에도 자유를 위해 유엔의 이름으로 참전 한 나라들이 많다.
도움에 대하여 잊지 않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은 도움에 대한 예의 일 것이다. 특히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준 도움에 대하여는 국가이든 개인이든 잊지 않고 적절한 보상과 예우를 해 주는 것이 마땅 할 것이다. 하나의 신념과 목숨이지만 나라마다 보상과 예우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루피와 조로를 데리고 운동장 스텐드를 한 바퀴 돌아본다.
하늘은 파랗고 뭉게구름이 떠있다.
하늘에 마치 루피와 조로가 노는 것 같은 구름이 있다.
루피와 조로는 오랜만에 야외에 나와서 좋아서 인지, 아니면 더워죽겠는데 고생시킨다고 그런지 헥헥거린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외곽순환도로를 이용해서 단구까지 가 보았다. 혼자 운전하며 찰칵.
집에 돌아 와서는 루피와 조로를 목욕시켰다. 날도 더운데 수영을 하면 좋으련만 둘다 물을 무서워 한다. 별걸 다 엄마 아빠를 닮았다.
산듯하게 목욕하고 저녁에는 엄마의 가게에서 엄마에게 기쁨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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